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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I News / May 2024

Dec 14

한자 두자 일곱 치

윤효순 (수필가)
돋보기를 밀어 올리는 영감님의 얼굴에는 땀이 배여 있었다.
파란색의 자전거 두 대를 사다가 뒤뜰 감나무 그늘 밑에 감추어 놓고 시간이 나면 가만히 나와서 함께 묶는 작업을 하는 중이였다.
행여나 문소리가 나면 일 하던 손 멈추고 시치미를 떼기도 했다. 한창 녹음을 자랑하는 이파리 속에 있는 작은 감들이 장난스런 얼굴로 그런 영감님을 내려다보는 듯 했다.
인기척이 사라지자 잘라온 네 개의 쇠 파이프 길이를 재 봤다. 정확성이 필요한 부분에서 열 번도 더 재어봤다. 그 모습은 옛날에 즐겨 부르던 노래를 생각나게 했다.
‘나이 많은 목수가 신발장을 짜는데
눈이 너무 어두워 망치 둔 곳 몰랐네.
.. . . . . . …………………………
한자 두자 일곱 치…’
한자 두자 일곱 치…
이만하면 핸들과 핸들 사이의 간격이 알맞게 될 것이었다.
자전거를 아내와 같이 타며 운동을 하고 싶었으나 타지 못하는 아내였던 것이다. 아무리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려 해보았는데 막무가내였다
평생을 발보다 넓은 곳만 딛고 살았는데 왜 이 나이에 불안전한 자전거 페달을 밝으라고 하느냐며 되레 큰소리를 치고 배우지 않겠다는 아내를 위하여 둘이 타는 네발 자전거를 만들고 있는 중이였다.
미리 알리면 하고 있는 다른 운동도 있는데 굳이 없는 돈 들여 자전거는 만드느냐고 반대를 할 게 뻔한 일이 아닌가. 혼자 몰래 만들어 놓으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같이 타게 될 테니 완성 될 때 까지는 알리지 말아야지 하며 열심을 다해 만들고 있었다.
먼저 제일 길게 잘라온 파이프로 한 끝에다가 뒷바퀴의 중앙 바퀴살이 퍼지기 시작한 부분을 묶었다. 그리고 다른 자전거의 꼭 같은 곳을 파이프의 남은 부분에 묶음으로 발목을 잡았다.
영감님 부부가 오래 전 결혼이라는 제도에 발목이 잡혀 같은 집에 살았던 것처럼 이제 어디든 같이 가자고 묵어 버린 것이다.
다음은 안장을 받히느라 올라온 부분을 묶었다. 배 부분이렷다. 가난해도 부하여도 한 솥 밥을 먹었던 생활의 의미. 아니 혹 떨어져 있을 때라도 맛있는 것을 보거나 식사 때가 되면 서로를 생각하고 챙기며 살아온 세월 아니겠는가?
그리고 앞 뼈대를 묶었다. 이것은 가슴을 묶는 작업이었다. 20대 중반까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남녀가 만나 한 생활을 엮어 가는데 얼마나 많은 갈등들이 있었던가.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몰려 올 때는 당장 치워 버리자 몇 번이나 보따리를 싸고 또 풀었던가! 도저히 머리로는 이해 할 수 없는 고비 고비마다 가슴속의 사랑으로 받아야 했던 사연들. 머리가 해 줄 수 없는 일을 가슴이 품어주어 지금까지 이루어진 가정을 그려보며 영감님의 손길은 소중한 것을 쓰다듬듯이 조여 놓은 나사를 만져 보았다.
그리고 이젠 핸들이다. 같이 묵어놓았지만 양쪽 다 조종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쪽의 핸들을 없앨 수도 있었으나 누구든 움직이고 싶은 데로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러다 동쪽으로, 서쪽으로 의견이 달라질 때는 어찌 할 것인가. 염려도 되지만 동으로든 서로든 누군가가 방향을 바꾸는 데로 가기로 해야지 다짐을 하면서.
지금 까지 살아온 것도 아옹다옹 의견이 대립 되였지만 결국은 결혼식장 주례 앞에서 그리고 하객들 앞에서 약속 했던 것처럼 검은 머리 파뿌리 되어가며 함께 살아 온 것 아닌가? 결혼은 함께 가기위한 약속임을 알고 그 원칙을 지키며 살았기에 가능한 일 이였을 것이다. 설마 두 사람이 타다가 누군가가 길이 아닌 곳을 좇아가지는 않을 테니까.
손잡이 양옆으로는 버들잎 모형의 날씬한 백미러를 붙이고 그 중앙에는 나팔모양의 혼까지 붙였다. 마지막으로 브레이크를 점검해 보았다. 어느 쪽이든 잡기만 하면 멈추게 되어 있음을 보고
만족한 끝마무리에 흐뭇한 미소를 보이는 영감님. 이리하여 세상에 하나뿐인 네발 자전거가 탄생된 것이다.
.’마누라가 기뻐하지 않더라도 만드는 재미가 있었으니 개의치 말아야지.’ 생각이 들자 갑자기 입에 걸린 미소가 사라졌다. 평소에 엔간한 선물을 하여도 감동에 인색한 부인 때문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영감님은 집안에 있는 부인을 불렸다. 자전거 앞에 동그란 눈을 하고 서서 한참을 바라보던 부인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찔끔 흘리며 고개가 영감님의 가슴으로 떨어졌다. “ 여보! 이담에 내가 죽거든 무덤을 크게 파줘요. 이 자전거랑 같이 가게.”
얼굴에 하나 가득 행복한 웃음을 담고 있는 영감님의 한쪽 팔은 부인의 어깨를 두들이고 있었다.